연구평가의 역효과 학문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함정

연구평가의 역효과 학문의 진정성을 위협하는 함정

초록

본 논문은 영국의 연구평가 제도(RAE·REF)가 의도와 달리 연구 문화와 대학 공동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 사례를 분석한다. 부르디외의 문화 재생산 이론을 틀로 삼아 2008년 RAE와 2014년 REF의 규칙이 어떻게 ‘게임 플레이’를 촉진했는지 살피고, 결과적으로 학문적 다양성 감소, 과도한 행정 부담, 연구자 간 경쟁 심화 등을 지적한다. 마지막으로 이러한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정책적 제언을 제시한다.

상세 분석

본 연구는 부르디외의 ‘문화 자본’과 ‘장(Field)’ 개념을 활용해 국가 차원의 연구평가가 학문 공동체 내부의 권력 구조를 어떻게 재편성하는지를 탐구한다. 부르디외에 따르면 학문적 장은 자율성을 유지하면서도 내부 규칙에 따라 자본을 축적하는 장이며, 연구평가 제도는 외부에서 강제하는 규범으로 장 내부에 새로운 ‘평가 자본’을 도입한다. 영국의 2008년 RAE와 2014년 REF는 평가 기준을 정량화하고, 연구 출판물·인용· 연구비 규모 등을 점수화함으로써 대학들이 ‘평가 친화적’ 전략을 채택하도록 압력을 가한다.

첫째, 평가 기준의 명확화는 연구자들이 실제 학문적 가치보다 점수 획득에 유리한 주제와 방법론을 선택하게 만든다. 이는 혁신적이거나 위험부담이 큰 연구가 소외되는 ‘보수화’ 현상을 초래한다. 둘째, 대학들은 연구팀을 재구성하고, ‘핵심 연구자’와 ‘보조 연구자’를 구분해 인센티브를 차등 배분함으로써 내부 계층화를 심화시킨다. 이는 부르디외가 말한 ‘문화 자본의 재생산’과 일맥상통하며, 기존의 명성 있는 교수진이 평가 자본을 독점하게 만든다.

셋째, 평가 주기에 맞춰 연구 성과를 ‘패키징’하는 과정에서 행정 부담이 급증한다. 연구자들은 논문 작성, 데이터 정리, 연구 윤리 검증 등을 평가 일정에 맞추어 급히 처리해야 하며, 이는 연구의 질적 향상보다는 양적 충족에 초점을 맞추게 만든다. 넷째, ‘게임 플레이’는 교차기관 협력과 국제 공동연구를 억제한다. 평가에서 인정받는 연구는 주로 영국 내 기관에 귀속되는 경우가 많아, 해외 파트너와의 협업이 평가 점수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위험을 회피하게 된다.

이러한 부작용은 장기적으로 학문적 다양성과 창의성을 저해하고, 대학 간 경쟁을 과도하게 격화시켜 연구 환경을 불안정하게 만든다. 따라서 연구평가 제도의 설계와 운영에 있어 ‘평가 친화적 행동’을 최소화하고, 진정한 학문적 가치를 반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이 필요함을 강조한다.